귀신은 속여도 DNA는 못 속인다.

귀신은 속여도 DNA는 못 속인다.

전자팔찌를 차고도 이어지는 성범죄자의 끊이지 않는 연결 범죄, 인육 제공을 의심하게 하는 무차별 토막살인, 국가 위기까지 몰고 가는 사이버테러, 범죄가 무차별해진 만큼 범죄를 막으려는 기술도 진보하고 있다. 누구도 원하지 않을 과학수사와 범죄의 굴레. 발견 60주년을 맞이한 DNA가 미궁에 빠진 수사 속에서 범인을 골라내고 있다. |
“국민과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하고, 정부를 대신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경찰청을 방문한 대통령이 끝내 대국민 사과까지 할 정도로 흉흉한 사건이 이어졌다. 2012년 8월, 성폭행범죄로 이미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살던 전과자 서진환은 서울 광진구의 한 주택에 침입해 30대 이 모 씨(37, 여)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했다.
이른바 서진환 살인사건으로 부르는 이 사건은 점점 흉포해져가는 우리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경찰청이 조사한 ‘2011년 범죄통계’에 따르면 성폭력과 강제추행은 2011년 1만 9489건이 발생했다. 2010년 1만 8256건이 발생했으니 6.7%가 증가했고, 하루에 성폭력 범죄가 평균 53건이나 발생했다는 뜻이다.
서진환 살인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경찰은 이미 다른 성폭행 피해자의 몸에서 체액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의뢰했다. 하지만 결과는 동일 유전자가 없다는 통보가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대검찰청에서는 서진환의 DNA를 가지고 있었다. 2004년 성폭행 사건으로 수감됐을 때 얻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이 유전자 정보를 공유했더라면 사전에 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질타가 쏟아졌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남은 소를 더는 잃지 않는 데는 효과가 있는 법. 서진환 살인사건을 계기로 검찰과 경찰이 손을 잡았다. 유전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풀지 못했던 사건들이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다.
2005년 12월, 경남 창원에 있는 한 주택에서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한 이 모 씨를 7년 만에 잡았다. 광주에서도 대검찰청으로부터 범죄자 4명의 DNA 정보를 공유해 2008년에 일어난 사건의 진범을 찾아 구속했다. 진주에서도 지난 사건의 용의자를 DNA 정보 공유로 찾아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60여 년 전인 1953년 DNA 구조를 규명했다. 이는 생명에 대한 접근 방식을 새롭게 만들었고 과학계에 커다란 획을 그은 연구 성과로 인정받아 1962년에 노벨상까지 수상했다.
과학수사 역시 DNA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수사의 핵심은 범인이 누군지 가려내는 일이다. DNA가 이 사람과 저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증거로 주목받으면서 지금은 기준이 되고 있다. DNA가 수사에 인정받은 것은 DNA가 밝혀진 이후로도 한참 후였다. 1987년 미국에서 최초로 DNA 감정 결과를 증거로 인정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2년 의정부 여중생 성폭행 사건에서 최초로 DNA 감정 결과를 활용했다.
이후 미국 FBI는 DNA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특정 표지 13개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CODIS)을 개발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 DNA를 법률로 정해서 과학수사에 적용한 것은 2010년 7월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부터다. 소위 DNA법이라고 부르는 법률제정으로 과학수사에 한 발 더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DNA법’이 시행된 후 DNA 감정은 신원확인 및 개인 식별에 필수적인 수단이 됐고 경찰은 현장에서 DNA를 찾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게 됐다. DNA를 검색하는 시간을 단축시켜준 것도 컴퓨터였다. 법 시행 후 1년 동안 살인사건 4건, 강도사건 53건을 비롯해서 성폭행사건 150건 등 해결하지 못했던 506개 사건을 해결했다. 국과수에서도 살인이나 강간, 아동폭력 등 11개 주요 범죄자의 DNA형을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검색해 연쇄강간범 등 수많은 미제사건 범인을 검거하는 성과를 올렸다. 데이터베이스가 커질수록 효과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사건 현장에서 용의자의 DNA를 찾아낼 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흔히 알려진 모근(털에서는 DNA를 추출하기 어렵다)과 혈흔, 정액 외에도 침과 땀, 각질, 비듬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증거물도 중요한 DNA 샘플이 될 수 있다. 모자나 마스크에서는 땀과 비듬이, 편지봉투와 우표 뒷면에서는 침이 나올 수 있으므로 용의자가 사용했던 물건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시신의 손톱 아래에 각질이나 혈흔이 남아 있지 않은지도 봐야 한다. 피해자가 몸부림치면서 손톱으로 범인을 긁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DNA는 ‘파장이 긴’ 자외선(365~415nm)을 받으면 강한 형광을 낸다. 보라색 빛(415~485nm)은 발자국과 맨눈에 보이지 않는 피부 상처, 혈흔 등을 찾아낸다. 혈액은 페놀프탈레인과 과산화수소를 만나면 진한 분홍색을 띤다. 헤모글로빈이 과산화물을 산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 혈흔이 있을 만한 곳에 과산화물인 루미놀 시약을 뿌리면 약 30만 배 희석된 혈액까지도 검출할 수 있다.
이제 DNA는 과학수사에 있어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증거 데이터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60년이 지난 지금에는 생리의학상이 아니라 평화상으로 두 번째 수상을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글. 김원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 DNA 60주년 기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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