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기업체 연구소에 근무할 때 출장차 일본 도쿄에서 6주 정도 머문 적이 있었다. 처음 외국에 나간 거라 오래 전 일이지만 많은 인상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식당마다 출입구 옆에 놓아둔 밀랍으로 만든 메뉴모형의 정교함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메뉴모형이 없었 건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조잡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일본의 메뉴모형들은 정말 먹음직스럽게 잘 만들어 놓아서 감탄했다. 게다가 나온 음식도 모형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요즘은 우리나라 식당의 메뉴모형도 상당히 수준이 높다.
어차피 메뉴라는 게 뻔한데 굳이 비싼 돈 들여 이런 모형을 갖다 둘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사람들도 메뉴모형이 식당에서 나오는 실제 음식과는 다르다는 걸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먹음직스럽게 만든 메뉴모형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 뿐 아니라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실제보다 더 맛있게 느끼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시각 정보가 미각중추에 영향 줘
스위스 식품회사인 네슬레의 연구자들은 칼로리가 높은 음식(양고기조각, 연어, 피자, 파이)나 칼로리가 낮은 음식(콩, 수박, 요거트, 파스타)을 보고 난 뒤 혀에 전기자극을 줘 전기 맛(electric taste)을 느끼게 했다.
전기맛은 쾌감의 관점에서는 거의 중성인 맛으로 사람에 따라 맛을 느끼기 시작하는 강도에서 금속의 맛(32%), 신맛(16%), 녹의 맛(11%)을 연상한다고 한다.


사전에 칼로리가 높은 음식의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전기맛에 대해 평균 2.9점을 줬다(쾌감의 정도를 5점 척도로 나타낼 때). 한편 사전에 칼로리가 낮은 음식을 본 사람들은 평균 2.75점을 줬다. 앞서 더 맛있는 음식의 사진을 본 사람이 똑같은 자극에 대해 더 맛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주관적인 평가와 함께 머리에 전극 64개를 붙여 뇌파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두 집단 사이에 미각에 관여하는 뇌부위의 활동도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칼로리가 높은 음식 사진을 본 사람들은 전기맛을 보고 나서 음식의 맛과 질감 뿐 아니라 여러 감각기관에서 오는 정보를 통합하는 섬엽(insula)의 활동이 더 활발했다. 또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쾌감에 관여하는 안와전두피질(OFC)도 더 활발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 뇌의 미각중추는 이미 먹게 될 음식을 맛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데는 시각과 미각이 밀접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과 어느 정도 맥이 통하는 결과다. 저자들은 논문 말미에 차후에는 시각 정보가 중성의 전기맛이 아닌 실제 음식 맛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겠다고 언급했다. 이 연구는 측정 과정에서 오차가 일어날 여지가 많아 정교한 실험설계가 필요하다고 한다.


기자는 문득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을 직접 증명할 실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즉 맛은 똑같으면서 한쪽은 먹음직스럽게 만들고 다른 한 쪽은 밥맛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두 집단은 위의 실험처럼 먼저 보고 난 뒤 먹어 평가와 측정을 한다. 또 다른 두 집단은 눈을 가린 채 먹으면서 평가와 측정을 한다. 만일 눈을 가린 실험에서는 보기 좋은 음식과 안 좋은 음식에 대한 반응에서 유의적인 차이가 없고(시료가 잘 준비됐다는 증명) 눈을 가리지 않은 실험에서는 차이가 있다면 속담이 증명된 게 아닐까. 연구자들에게 우리 속담과 함께 이를 증명할 실험 아이디어를 알려주고 답을 들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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